
“아파트 1,800세대가 들어온다. 그렇다면 집값은 얼마나 오를까?”
대규모 재개발 소식이 발표될 때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152-65 일대의 신속통합기획을 숫자와 집값만으로 바라본다면 이번 계획에서 정작 중요한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서울시가 제시한 계획의 핵심은 최고 35층과 약 1,800세대라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좁은 일방통행 도로를 양방통행 중심으로 바꾸고, 공원과 공영주차장을 확충하며, 서울시립대와 주거지역 사이의 보행동선을 연결한다. 최대 약 22m에 이르는 구릉지의 높이차를 새로운 공간설계로 풀어내는 계획도 포함됐다.
결국 이번 사업은 낡은 주택을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전농동의 도로와 보행환경, 주차공간, 녹지,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까지 다시 설계하는 도시 재편에 가깝다. 그래서 전농동의 미래를 판단하려면 ‘몇 세대가 들어오는가’보다 ‘동네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변화, 35층·1,800세대보다 중요한 것은 ‘동네의 체급’이다
대상지는 72,594.2㎡ 규모다. 계획에 따르면 제3종일반주거지역과 용적률 300% 이하를 적용하고 최고 35층, 약 1,800세대 규모의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현재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노후화다.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전체의 70.2%를 차지한다. 폭 3~6m의 협소한 도로가 많고 일방통행 중심으로 운영돼 차량 이동뿐 아니라 보행환경에도 불편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재개발을 단순한 주택 공급사업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1,800세대 안팎의 주거단지가 조성되고 도로와 공원, 생활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서면 기존 저층주거지 중심의 공간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왕산로와 철도변에는 최고 35층 규모의 랜드마크 주동이 계획됐다. 전농로변 공원에서 단지 내부까지 개방감을 확보하는 배치도 추진된다. 이 변화가 현실화하면 전농동의 스카이라인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진다. 청량리 일대에서 이어지는 도시 변화와 맞물려 전농동 역시 새로운 주거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약 1,800세대라는 숫자는 최종 확정 공급량이 아니다. 신속통합기획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산정한 계획이며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구체적인 세대수는 향후 정비계획 입안 과정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1,800세대 확정’이라는 숫자만 보고 사업의 미래를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두 번째 변화, 좁은 골목의 문제가 ‘지역 교통망’의 문제로 확장된다
재개발에서 새 아파트만큼 중요한 것이 도로다. 아무리 좋은 주택을 지어도 수천 명의 주민과 차량을 감당할 도로가 부족하면 주거환경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농동 152-65 일대의 기존 도로환경은 이 점에서 개선 필요성이 컸다. 협소한 도로와 일방통행 중심의 교통체계가 오랫동안 생활의 불편으로 작용해 왔다.
이번 계획에서는 전농로34길과 전농로38길을 양방통행이 가능하도록 확폭하고 대상지 동쪽에는 폭 12m의 우회도로를 신설한다. 전농로34길과 만나는 전농로에는 신호교차로를 설치해 좌회전 진출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전농로에는 가감속차로와 버스베이도 확보하는 계획이다. 일부 구간에는 입체도로 개념을 적용해 기존 도로 기능을 유지하면서 토지 활용과 지하주차장 접근성을 함께 높이는 방안도 제시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통 개선의 범위가 단지 입주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 양측에 보도를 확보하고 전면공지와 보행공간을 연결하면 기존 지역주민 역시 변화된 보행환경을 이용하게 된다. 재개발의 편익이 아파트 단지의 담장 안에 머무르느냐, 주변 생활권까지 확산하느냐를 가르는 부분이다. 따라서 앞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단순히 도로가 몇 미터 넓어지는가가 아니다. 실제 정비계획과 교통계획에서 새로운 1,800세대 안팎의 주거수요와 기존 지역의 교통수요가 어떻게 조정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 번째 변화, 공원과 공영주차장이 ‘재개발 밖의 주민’에게도 열린다
전농동 152-65 일대의 또 다른 특징은 국·공유지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업지의 25.7%, 약 18,658㎡가 국·공유지다. 과거 청량리역 철도관사 조성구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 토지를 재배치해 도로와 공원,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대상지 북측에 공원을 배치하고 공원 하부에는 공영주차장을 조성하는 계획이 눈에 띈다. 이는 주변 저층주거지역이 안고 있는 주차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이다.
재개발 사업을 평가할 때 이러한 요소는 중요하다. 대규모 정비사업이 주변 지역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개발이익과 생활환경 개선의 혜택이 사업구역 내부에 집중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 주민만 누리는 조경공간이 아니라 기존 주민도 접근할 수 있는 공원, 주변 저층주거지역의 주차난까지 고려한 공영주차장이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좋은 재개발의 기준은 새 아파트가 얼마나 화려한가에만 있지 않다. 재개발 이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과 주변 생활권이 개발 이후 어떤 혜택을 공유하는지도 중요하다.
네 번째 변화, 서울시립대와 전농동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서울시립대와의 연결이다. 전농동 152-65 일대는 서울시립대와 맞닿아 있지만,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이 반드시 하나의 생활권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학과 주거지가 인접하면서도 도로와 공간구조에 따라 생활동선이 분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계획에서는 서울시립대와 인접한 시립대로29길을 보행자전용도로로 전환한다. 기존 생활동선을 유지하면서 학생과 주민의 보행안전을 높이는 방향이다. 여기에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과 주민공동시설을 배치한다. 전농로변에는 유동인구를 고려한 근린생활시설을 조성해 가로 활성화도 유도한다.
주거공간에도 대학 인접지역이라는 특성이 반영된다. 대학생 등의 거주수요를 고려한 세대통합형 평면을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대목은 전농동 재개발이 가진 차별점이다. 대학이 가까운 아파트를 만드는 것과 대학과 연결된 동네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입지의 문제지만 후자는 도시생활의 문제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지역 상권을 이용하고 주민이 대학 주변의 보행공간과 생활시설을 공유하며, 단지의 커뮤니티 시설과 근린생활시설이 거리의 활력으로 연결된다면 전농동은 단순한 베드타운과 다른 생활권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단지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아파트 공간으로 조성된다면 ‘서울시립대와 연결되는 열린 주거단지’라는 계획의 의미는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향후 정비계획에서는 건물의 높이만큼이나 단지의 경계와 보행동선이 어떻게 설계되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다섯 번째 변화, 22m 높이차를 ‘약점’이 아니라 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농동 152-65 일대 개발에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 가운데 하나는 구릉지다. 동남측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져 최대 약 22m의 높이차가 발생한다. 평탄한 대지를 전제로 한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 설계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서울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지형과 주변 도로 높이를 고려한 데크형 대지를 계획했다. 단지 곳곳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경사로 등을 설치하고 데크 하부에는 주민공동시설을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잘 구현된다면 구릉지는 단점만은 아니다.
높이차를 억지로 지우는 대신 건축과 보행공간, 커뮤니티 시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면 평지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독특한 공간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획과 실제 생활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한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됐다는 사실만으로 보행 편의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와 고령자,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까지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데크 하부의 주민공동시설 역시 남는 공간을 채우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 찾아오는 생활공간이 돼야 한다. 22m라는 높이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결국 이번 재개발의 공간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신통기획 확정은 결승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전농동 152-65 일대는 2023년 11월 신속통합기획 후보지로 조건부 선정된 뒤 자문과 주민간담회,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2026년 9월 신속통합기획이 확정됐다. 이제 정비계획 입안 등 후속 절차가 이어질 예정이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35층, 1,800세대’라는 숫자만으로 미래를 확정해 버리는 시선이다.
신속통합기획은 도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한 단계다. 실제 사업 과정에서는 정비계획과 각종 심의, 사업 추진 과정 등을 거치면서 세부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계획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농동의 변화는 아파트 몇 동을 새로 짓는 문제가 아니다. 좁은 골목을 넓히고, 자동차와 사람이 뒤섞이던 길을 정비하며, 부족했던 공원과 주차장을 확충하고, 서울시립대와 지역사회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구릉지라는 불리한 조건을 입체적인 공간으로 풀고 왕산로와 철도변의 스카이라인까지 다시 설계한다. 결국 재개발의 진짜 가치는 새 아파트의 가격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
좋은 재개발은 기존 주민과 새 주민이 함께 편리해지는 개발이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안의 조경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골목의 보행환경도 나아져야 한다. 새 주민의 주차장만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저층주거지의 주차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단지의 ‘입지 프리미엄’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생활공간으로 연결돼야 한다.
전농동 152-65 일대가 앞으로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재개발로 집값이 얼마나 오를까?”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 재개발로 전농동에서 사는 삶은 얼마나 좋아질까?”라고 물어야 한다. 35층 높이의 아파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건물 아래에서 사람들이 걷고, 만나고, 쉬고, 이동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전농동 신통기획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해 지금이야말로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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