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 의료 현장에서 연락이 온다. AI 실무 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자리를 채운 얼굴들이 보인다. 신입이 아니다. 대부분 팀장이고 실장이고, 한 부서를 오래 지켜온 중간관리자들이 많다. 그런데 그 얼굴들이 하나같이 조금씩 굳어 있다. 새로운 걸 배우러 온 사람의 설렘이 아니라, 무언가에 쫓겨 온 사람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AI 실무 교육을 하는 몇년동안 그 표정을 수없이 봐서,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이러다 내 자리도 사라지는 거 아닐까..'
말로 꺼내지 않아도 강의실 전체가 그 질문을 품고 있다. AI가 행정 업무를 가져가고, 보고를 가져가고, 그동안 내 손으로 해오던 일을 하나씩 가져가는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느냐는 것이다. 그 불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늘 같은 말부터 한다.
안심하셔도 된다고.
빈말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AI는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을 아는가.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 틀린 수가 코드를 마치 정답인 양 자신 있게 내놓고, 존재하지 않는 규정을 진짜처럼 지어낸다. 화면 위의 문장은 매끄럽고 확신에 차 있어서,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것이 거짓인 줄도 모르고 그대로 받아 적는다.
그 거짓을 잡아내는 건 더 똑똑한 AI가 아니다. 현장이다. "이건 좀 이상한데" 하고 멈춰 서는 그 감각, 수많은 환자와 수많은 청구와 수많은 예외를 몸으로 겪어온 사람만이 가진 직감. 그 직감은 데이터로 학습되지 않는다. 근무한 시간만큼 실패와 성과로 경험을 쌓인다. AI가 아무리 빨라도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이. 그것은 바로 그 시간이다.

또 하나, AI는 답은 주지만 질문은 만들지 못한다.
무엇이든 물으면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병원의 동선 어디에서 환자가 자꾸 길을 잃는지, 어느 시간대에 접수대가 무너지는지, 왜 그 환자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는지. 이런 질문은 매일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좋은 아이디어는 답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현장에서 나온다. AI에게 무엇을 시킬지 아는 사람과, AI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이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실의 중간관리자들에게 말한다.
위협받는 건 당신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이 아직 없는 자리라고. 신입이 하던 단순 반복 업무는 AI가 가져갈 수 있어도, 그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판단은 가져가지 못한다고.
그러니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에 큰 점수를 주라고 말하고 싶다.
병원에서 겪은 그 수없이 많은 일들, 진상 환자를 달랜 시간도, 청구가 반려돼 밤늦게 원인을 찾던 시간도, 신입의 실수를 대신 수습한 시간도, 그 하나하나가 지금의 당신을 만든 자산이다. 별것 아닌 일들의 더미라고 스스로 깎아내리지 마라. 그 더미가 바로 AI가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중간관리자가 정작 자기 경험을 짐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이 나이에 무슨 AI를" 하고 스스로 물러선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큰 자산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밀려난다. 깊은 경험도 옛 방식만 고집하면 빛을 잃지만, 그 경험이 AI를 도구로 쥐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24년의 감각이 AI의 속도를 만나면, 혼자서는 한나절 걸리던 일을 정확하게 한 시간에 끝낸다.
그러니 증명하면 된다.
경험과 AI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AI를 부려서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일한다는 것을. 그 모습을 보이는 사람 앞에서, 자리가 사라질까 하는 질문은 저절로 사라진다.
병원이 할 일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중간관리자를 불안 속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AI를 도구로 쥘 수 있도록 손에 쥐여 주는 것이다. 경험은 이미 그들 안에 있다. 거기에 도구 하나를 더하면 된다.
AI는 정확하고 빠르다. 그러나 그 빠른 답이 거짓일 때 멈춰 세우는 것도, 애초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
강의를 마치고 나설 때, 들어올 때보다 풀린 얼굴들을 본다. 자기 안에 이미 있던 것이 사라질 짐이 아니라, AI 시대에 가장 귀한 자산이라는 걸 알게 된 얼굴이다.
당신의 병원에서 그 경험은 지금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가. 짐으로 여겨 밀어내고 있다면, AI가 가져가기도 전에 그 경험은 스스로 병원을 떠난다.
[필자소개]
정 경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KAPS) 협회장 · 바스제로 컨설팅 대표 | 병원 경영 컨설턴트 · 전문면접관
24년간 물리치료사로 병원 현장을 지켰다. 직원이었고, 팀장이었고, 중간관리자였다. 그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를 확인했다. 병원을 지키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끝내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 곧 조직을 지키는 일이라 믿는다. 현재 경영 컨설턴트로서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경영파트너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전문면접관·CS 컨설턴트로 의료기관및 공공기과, 기업의 강의·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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