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칼날만이 아니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69)

내면의 어둠이 생명의 빛을 가로막을 때

자기 파괴라는 이름의 조용한 침식에 대하여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이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9문

 

Q. What is forbidden in the sixth commandment? A. The sixth commandment forbiddeth the taking away of our own life, or the life of our neighbor unjustly, or whatsoever tendeth thereunto.
문. 제6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6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이나 이웃의 생명을 불의하게 빼앗는 것이며, 또한 그럴 만한 경향이 있는 모든 것입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행 16:28)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6)

 

이미지 제공: 수현교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9문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실천적이고 예방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단순히 숨을 끊는 최종적 행위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경향(Tendency)'까지도 금지 목록에 포함시킨다. 이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원인이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뒤틀린 감정과 잘못된 생활 습관,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독소들에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본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경계하는 것은 '자기 파괴적 경향'이다. 소요리문답은 우리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는 '자기 착취'와 '중독'의 관점에서 재조명해 볼 수 있다. 성취 지향적인 사회에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워커홀릭(Workaholic), 몸을 돌보지 않는 무절제한 식습관, 혹은 영혼을 좀먹는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은 모두 제6계명을 어기는 '느린 살인'이다. 

 

누가복음 21:34절이 경고하듯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조차 생명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위험 요소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의무가 있으며,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로, 이웃의 생명을 '불의하게' 빼앗는 경향이다.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단언했다(요일 3:15). 미움과 분노는 상대방의 존재를 내면에서 먼저 삭제하는 행위다. 타인을 향한 혐오 표현, 인격적 모독, 가스라이팅 등은 육체적 생명을 끊지 않았을지라도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과 '정신적 생명'을 난도질하는 살인 행위와 다름없다. 소요리문답은 이러한 내면의 살의(殺意)가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 그 싹부터 잘라낼 것을 명령한다.

 

 

셋째로, '그럴 만한 경향이 있는 모든 것(Whatsoever tendeth thereunto)'에 주목해야 한다. 레위기 19:16절이 지적하듯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 안전 규정을 무시한 부실 공사, 혹은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공정 거래 등은 모두 간접적인 살인 공모이다.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냉소주의 역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강력한 경향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방관자는 가해자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라는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2016)의 말처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살인적이다.

 

이렇듯 소요리문답 제69문은 우리에게 '생명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내 안에 솟구치는 분노를 다스리고, 나 자신의 건강을 귀히 여기며,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감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곧 이 계명을 지키는 길이다.

 

생명은 단 한 번의 사고로 사라지기보다, 수많은 작은 '소홀함'과 '미움'의 축적으로 인해 서서히 시들어간다. 오늘 내가 무심코 던진 비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생명의 불꽃을 끄는 '경향'이 되지는 않았는지, 혹은 나의 탐욕이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일은 그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작은 틈새를 막아내는 성실함에서 시작된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4.13 10:39 수정 2026.04.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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