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예산은 역대 최대, 체감은 역대 최저” 중소기업 현장의 '지원 역설'

서류가 곧 경쟁력? 행정 절차에 지쳐 기회 놓치는 중소기업

"담보 없으면 그림의 떡" 신용 낮으면 닿지 않는 정책자금

모든 기업에 똑같은 지원? 효율성보다 관료주의에 갇힌 정책

 

정부는 올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2025년도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은 국회 의결을 통해 15조 2,488억 원으로 확정되며, 금융·R&D·수출·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지원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정책은 많은데, 정작 기업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없다”는 불만이 여전하다. 지원이 늘어날수록 서류는 복잡해지고, 행정 절차는 느려져, 정작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기회를 놓치는 '지원 역설(逆說)'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시흥에서 기계부품을 제조하는 박대표의 사례는 중소기업들이 겪는 고질적인 행정 피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대표는 정부의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에 도전했다가 수십 장에 달하는 준비 서류와 기관별로 다른 양식에 지쳐 결국 포기했다. 현장에서는 “서류만 넘기다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하소연이 반복된다.

 

경기도 00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다수가 전문 행정 인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복잡한 절차는 참여 포기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업마당' 같은 온라인 통합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나, 전남의 한 소상공인의 지적처럼 플랫폼에 들어가 보면 지원사업이 1,000건 이상 올라와 오히려 정보 과잉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서류 중심 대신 현장 심사 중심의 제도”로의 전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자금 지원 분야에서도 현실과의 간극은 명확하다. 경기도 화성에서 20년째 금형 사업을 하는 이 대표는 "정부자금 대출은 금리는 낮지만, 신용등급이나 담보조건이 까다로워서 실제 혜택은 조건이 맞는 일부 기업만 누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은 융자·보증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신용이 낮거나 담보가 부족한 영세업체는 지원을 받기 어렵다.

 

또한 사업계획서 평가 중심의 선정 방식은 '기술력'보다 '문서력'을 우선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 지역경제진흥원 관계자는 "정말 기술력 있는 기업이 탈락하고, 보고서 작성이 능숙한 기업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실태를 전했다.

지원금 지급 시기와 속도가 늦어 긴급한 자금난 해소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장에서는 “3개월 뒤에 나오는 보조금보다, 지금 당장 한 달 임대료가 급하다”는 말이 반복되며, 정책이 '사후지원'이 아닌 '선지급-사후관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산의 크기보다 지원의 효율성과 체감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SCC기업경영연구소 김도윤 대표는 "지금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구조는 여전히 관료 중심적"이라며, 지원사업이 '성과사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지원 방식의 일률성이다. 스타트업에는 투자형 자금과 기술 멘토링이, 전통 제조기업에는 스마트화·설비 개선형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업은 ‘모든 기업에 동일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다. 서울의 경영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정책의 목적이 너무 많고,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다"며 "중복사업을 통합하고, 평가와 환류 시스템을 강화해야 진짜 효과가 난다"고 조언했다.

 

2025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15조 2,488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지원은 있는데 체감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예산의 부족이 아니라, 지원의 전달 구조가 현장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지원사업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하나의 실질적 지원”이다. 이제 정부는 숫자가 아니라 속도와 접근성, 실행력에서 체감되는 정책을 마련하고, 행정이 아니라 현장을 중심으로 한 실행 구조로 전환해야 할 때다.

작성 2025.10.23 19:14 수정 2025.10.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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